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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 상식/역사이야기

안테 파벨리치 인종 청소 (크로아티아 괴뢰정권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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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아티아 독립

곳곳이 독일, 이탈리아 등의 점령지가 된 유고 지역이었으나 유일하게 크로아티아는 독립을 했다. 크로아티아의 독립을 지원한 국가는 나치 독일이었다. 크로아티아 내 나치 지지들에 의해 세워진 괴뢰정권이었다. 

 

곳곳이 독일, 이탈리아 점령지가 된 유고지역


안테 파벨리치 인종청소

이때 크로아티아인들에 의해 첫번째 인종 청소가 이루어진다. 크로아티아 독립국가는 나치를 등에 업고 이 지역에 있는 민족 중에서 크로아티아인을 제외한 모든 민족을 대량 학살과 탄압을 하게 된다. 그 중에서 가장 탄압을 받은 민족은 세르비아인이었다. 과거 유고슬라비아 왕국시절 파워가 있었고 독재와 탄압에 대한 앙갚음을 한 것이다. 크로아티아  인종청소의 중심에 섰던 인물이 안테 파벨리치였다.

 

발칸의 히틀러 안테 파벨리치


안테 파벨리치와 히틀러의 공통점

크로아티아의 극우 민족주의 단체 지도자였으며, 나치 독일에 괴뢰정권의 크로아티아 독립국 국가원수이자 독재자였고 그는 히틀러와 비슷하게 극단적인 민족주의자였다. 또한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기도 했다.

 

 

그의 목표는 크로아티아 독립국가를 크로아티아인과 가톨릭 신자만의 국가수립을 원했다.  다른 종교인과 다른 민족은 그의 영토에서 청소를 시켜야겠다고 생각했고 이것이 안테 파벨리치가 자행한 인종 청소의 시작이었다. 그 혐오는 결국 끔직한 집단 학살을 일으켰다.

 

 

종 청소 방법

안테 파벨리치는 대량학살과 더불어 가톨릭으로 강제 개종까지 시켰다. 안테 파벨리치의 인종 청소 방법은 추방 개종 아니면 학살이었다.  심지어는 불시에 가정집으로 찾아가 일가족 전체를 학살하기도 했고 학살의 명목은 종교 개종 단 하나였다.

 

 

가톨릭이 아니고 세르비아사람을 구분하는 방법은 길거리 가다가 갑자기 성호를 그어보라고 하고 성호 긋는 순서가 다르고 손가락도 가톨릭은 5개 손가락 이용 , 정교회는 3개의 손가락을 이용하기 때문에 이를 보고 불시검문으로 그 자리에서 사살해 버렸다.  또한 나치와 비슷하게 크로아티아 내에도 강제수용소가 수십군데였다.

 

 

야세노바츠 수용소
수용소에 끌려간 사람들은 식량과 위생용품을 거의 제공받지 못했고 수용소에서 지내다가 죽거나 처형당해 죽어야 하는 끔찍한 상황이었다. 그 중 가장 악명이 높았던 수용소 야세노바츠 수용소가 있다.  당시 나치 마저도 크로아티아인에 대해 적당히 좀 하라고 얘기할 정도로 너무 잔인해 나치들도 말렸던 수용소이다. 

 

4년 동안 야세노바츠 수용소 사망자는 약 10만 명 ~75만 명에 이르렸다. 2차 세계대전 중  세르비아 전체지역에서 죽은 사람이 170만명이었는데 그 중에 100만명이 인종 청소로 인해 사망했다.  

 

안테 파벨리치의 최후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은 종전되고 나치가 항복하면서 인종 청소를 주도했던 안테 파벨리치는 오스트레일리아, 아르헨티나, 스페인으로 도주를 했다. 그러나 끝까지 쫓아왔던 세르비아인에 의해 1959년 총상을 입고 치료 중 스페인에서 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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