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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이야기

짜장면(=자장면) 기원,유래 및 중국식 짜장면과 차이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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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장면(=자장면) 기원 

중국식 짜장면은 맛이 다르다. 중국식 짜장면은 1882년 임오군란 때 청나라 군사와 함께 장사군이 유입되면서 처음으로 중국식 짜장면이 조선에 들어왔다.  한국식 짜장면의 기원은 인천 제물포 항이 1883년 개항되면서 일거리를 찾아 들어온 중국 노동자들로 차이나타운에서 시작되었다. 1880년대 당시에는 인천 차이나타운은 청나라의 조계지였기 때문에 차이나타운에 중국 요릿집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청나라 조계지 옆에 일본 조계지도 있었기 때문에 일본사람을 대상으로 팔았는데 일본인들이 단무지와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을 보고 단무지를 곁들인 것이다. 

 

최초의 짜장면 가격은 15원에서 시작했다. 60후반 20원 , 1974년 200원, 1988년 700원, 1990년대 1300원, 1990년말 2000원...

 

인천항에서 일을 하던 부두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짜장면을 팔기 시작했고 이것이 점점 값싸고 손쉽게 먹을 수 있고 한국사람의 입맛에 맛게 한국식으로 현지화가 되면서 오늘날의 짜장면으로 발전한 것이다. 

 

한국에서 중식당을 운영하는 화교들은 90% 이상이 산둥성 출신이다. 한반도와 가까운 지역으로 한국으로 많이 이주한 산둥성 출신 화교들이 많고 1880년 상인 40명이 최초의 화교 원조로 보고 있다. ‘춘’ 이 붙은 가게도 산둥성 출신 화교가 운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짜장면의 발상지로 알려진 인천 차이나타운 안에 위치한 공화춘이 대표적이다.  

 

산둥지방은 파와 마늘같은 채소가 많이 났던 지역이다.

 

공화춘은 1908년부터 한국 최초로 짜장면을 판매하던 중국집으로 알려진 장소로 화교가 운영했고 산동회관으로 영업을 시작 1911년 이름을 공화춘으로 변경했다. (1911년 1월 15일 청나라->중화민국으로 바뀐 것을 자축하며 이름을 공화춘(공화국에 봄이 왔다)으로 변경 그러나 화교출신 주방장들은 당시에 여러 곳에서 이미 짜장면을 판매하고 있었다는 증언이 있어 짜장면의 시작이 공화춘인 것은 여전히 의견이 분분한 상태지만 그 기원이 차이나타운인 것은 확실하다.

 

(현재 공화춘은 짜장면 박물관으로 조성되어 있다)
4월 14일은 블랙데이로 짜장면 먹는 날이다. 2월 14일은 발렌타인 데이, 3월 14일은 화이트 데이라 하여 즐기다가 솔로를 위한 날도 만들자는 취지의 다음달인 4월 14일 블랙데이

 

 

 

한국식 짜장면과 중국식 짜장면의 차이 

한국식 짜장면은 소스가 많고 달지만 중국식 짜장면은 고기와 장을 기름으로 볶고 그 기름으로 채소를 버무려 먹는 음식으로 면이 차가운 여름음식이다. 중국 검색 사이트에 짜장면을 검색하면 한국식 국수 요리라고 나온다.

 

이 모습이 100년전에 먹던 당시 짜장면의 모습이다. 춘장으로 돼지고기 비계기름에 돼지고기와 파만 볶아서 국물과 함께 나왔다. 면이 퍽퍽하고 불기때문에 국물을 조금식 부어서 짜장소스와 비벼먹는 방식이었다.
중국식 짜장면은 원래 표기 炸醬麵 찰장면(튀길 작 장 장 밀가루 면) 중국 면장을 튀긴 소스에 면을 넣어 먹는 음식으로 중식 춘장은 갈색에 짠맛이 강함(산둥지방의 가정음식이었던 된장 비빔면 정도의 느낌)

 

한국식 검은색 춘장의 비밀

한국식 춘장은 대두를 발효해 만든 것이었기 때문에 초기에는 갈색빛이 났다. 1960년대 외식메뉴 1위가 짜장면이었던 시절 춘장 회사끼리 경쟁이 있으면서 검은색 춘장이 잘 발효된 것이라는 거짓소문이 퍼트리면서 (검지 않으면 된장이다 라는 인식) 춘장을 만드는 회사끼리 경쟁이 되먼서 설탕을 태워 춘장을 착색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검은색으로 변형이 된 한국식 춘장이다. 

 

우리의 된장 만드는 방식이다.
요즘은 카라멜(사탕수수+옥수수 전분)을 첨가해 검정색을 낸다. 시간이 흐르면서 검정색 춘장이 한국식 짜장면을 특징지우게 됐다.

 

 

이런 임오군란 이후 조선에 들어온 음식으로 짜장면과 함께 탕수육이 있고 일본식 이름인 '텐푸라'라고 하는 고기 튀김요리도 있다. 

 

고기덴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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