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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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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토의 유고슬리바아 연방 ~ 밀로셰비치의 인종청소 2 [이전이야기 ] 유고 내전 속 안테 파벨리치 인종 청소 (크로아티아 괴뢰정권) 티토의 유고슬라비아 연방 창설 2차 세계대전 이후 유고슬라비아 민족 갈등을 멈춘 인물은 요시프 브로즈티토였다. 이 사람은 오늘날까지도 상당수의 사람들이 숭상하고 있는 인물로 크로아티아인 아버지와 슬로베니아 인 어머니를 둔 혼혈 민족 출신인데 1차 세계대전 당시 러시아 제국의 포로로 잡혀 수용소에서 가게 되고 거기서 배운 것이 사회주의 이념이었다. 그것을 바탕으로 고국으로 돌아온 후 사회주의 세력을 규합하고 파르티잔=빨지산을 규합해 나치에 끝까지 저항을 했던 인물이다. 결국 1945년 독일의 패망과 함께 티토를 중심으로 사회주의적 유고슬라비아 연방을 창설하게 된다. 공화국내 이주를 장려하여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고, 단일국가를 꿈..
스레브레니차 학살 사건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대량 학살) 3 [이전이야기 ] 유고슬리바아 연방 ~ 밀로셰비치의 인종청소 2 보스니아 독립 과정 이제 연방 안에는 3개 공화국과 2개 자치주만 남게 된다.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는 민족간에 친밀했다. 다른 나라와의 독립전쟁을 보면서 보스니아도 고민에 빠진다. 결국 보스니아도 독립을 결정한다. 보스니아 보스니아는 카톨릭, 이슬람, 정교회가 혼재되어 있는 대표적인 지역이다. 선 위에 서서 동쪽을 보면 오스만 제국 시절 형성된 터키식 구시가지가 있고 서쪽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시절의 유럽식 구시가지있는 두 문화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매력적인 도시이다. 오스만 제국 영향으로 유럽 안에서도 이국적인 도시이다. 보스니아는 유고내전 중 20세기 말 최악의 전쟁터이자 최악의 인종 청소가 일어났던 곳이다. 1992년 3월 보스니아가 유..
[벌거벗은 세계사 40회] 유고슬라비아 내전 전범들은 어떻게 되었나?? [이전 이야기 ]스레브레니차 학살 사건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대량 학살) 3 보스니아의 스레브레니차 인종 청소를 주도했던 인물이 라도반 카라지치(스르프스카 공화국 지도자) , 라트코 믈라디치(스르프스카 공화국 사령관)었다. 밀로셰비치와의 협력 관계 속 보스니아 전쟁을 주도 했고 정식군대가 아닌 민병대를 활용해 인종 청소를 지시, 보스니아 민족 및 종교 단체에 대한 집단 학살을 계획, 명령 및 방조했던 전범들이다. 이 갈등을 일으킨 전범들을 과거 유고 연방에 속했던 민족들이 UN국제형사재판소에 기소되었고 전 세계에 낱낱이 공개되었다. ICTY가 다룬 중요범죄 항목은 대량학살, 인권유린 범죄, 전쟁 관례 혹은 법률 위반 제네바 협약의 중대 위반으로 밀로셰비치, 믈라디치를 포함 유고 연방 해체 과정 중..
안테 파벨리치 인종 청소 (크로아티아 괴뢰정권 속) 이전 이야기 크로아티아 독립 곳곳이 독일, 이탈리아 등의 점령지가 된 유고 지역이었으나 유일하게 크로아티아는 독립을 했다. 크로아티아의 독립을 지원한 국가는 나치 독일이었다. 크로아티아 내 나치 지지들에 의해 세워진 괴뢰정권이었다. 안테 파벨리치 인종청소 이때 크로아티아인들에 의해 첫번째 인종 청소가 이루어진다. 크로아티아 독립국가는 나치를 등에 업고 이 지역에 있는 민족 중에서 크로아티아인을 제외한 모든 민족을 대량 학살과 탄압을 하게 된다. 그 중에서 가장 탄압을 받은 민족은 세르비아인이었다. 과거 유고슬라비아 왕국시절 파워가 있었고 독재와 탄압에 대한 앙갚음을 한 것이다. 크로아티아 인종청소의 중심에 섰던 인물이 안테 파벨리치였다. 안테 파벨리치와 히틀러의 공통점 크로아티아의 극우 민족주의 단체 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서안지구 분쟁 이야기 [39-4] 이전 이야기 벌거벗은 세계사 39-3 중동 전쟁 이야기 오슬로 협정의 헛점 중동전쟁의 마무리로 오슬로 협정을 맺었고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가 만들어진다. 그러나 이 협정에는 큰 허점이 있었다. 유대인 정착촌 문제가 빠져있었던 것이다.서안지구의 자리잡은 유대인 정착촌 문제가 다시 갈등이 씨앗이 되고 오슬로 협정이후 유대인 정착촌 주민이 4배가 늘어난다. 이에 팔레스타인은 오슬로 협정에 대한 반발의 목소리가 높았다. 결국 이 불만이 큰 사건으로 이어진다. 이스라엘 극우파 사람들의 눈에 가시었던 라빈총리가 1995년 극우파 청년에 의해 암살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라빈 총이 암살후 1996년 후임 총리가 된 네타냐후 총리는 오슬로협정 무효를 선언 팔레스타인 문제에 강경 대응한다. 네타냐후 총리의 등장으로 평화에서..
벌거벗은 세계사 39회 중동 전쟁 이야기 팔레스타인 분쟁의 씨앗 영국은 무엇을 했나? [39-2] 이렇게 유대인과 아랍인들사이에 싸움이 나기 시작하고 어렵게 얻은 땅을 필사적으로 지키려는 유대인과 원래 갖고 있던 땅을 되찾으려는 아랍인들 사이에 분쟁이 시작되고 급기야 엑 유대인 무장 민병대가 마을 전체를 피로 물들인 주민학살 까지 일어나게 된다. 이렇게 시작한 두 민족간의 치열한 전쟁이 진행되었다. 이스라엘 건국 하지만 독립국가의 대한 강력한 의지가 있었던 유대인들이었고 그에 비해 자신들을 아랍 민족으로만 생각했던 팔레스타인 사람들 땅을 내줄 수밖에 없었다. 곧바로 유대인들은 국가 수립을 준비한다. 1948년 5월 14일에 초대 총리 다비드 벤구리온이 독립국가 수립을 선포한다. 긴 기다림 끝에 유대인들은 마침내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건국하게 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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