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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 그림이 난해한 이유 < 우는 여인 > 으로 알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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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의 대표작 게르니카 이외에도 피카소는 전쟁과 평화에 대한 작품을 많이 남겼다. <우는 여인> 은 게르니카를 그린 시기와 비슷해서 전쟁의 비극, 공포를 표현한 첫 번째 실험작이다.  빨간 모자에 파란색 꽃, 강령한 표현의 눈과 눈물, 손수건을 움켜진 손 등 원색과 보색의 대조로 격렬한 감정을 표현한 작품이다.  

 

피카소 우는 여인
피카소 우는 여인


 <우는 여인>은 누구?

<우는 여인>의 모델은 당시 피카소와 사귀던 도라 마르라는 여인으로 도라 마르도 역시 사진작가로 피카소의 <게르니카> 제작 과정을 사진으로 남기는 등 든든한 피카소의 조력자 역할을 했던 그녀이다.  도라 마르가 남긴 기록이 피카소의 작품의 가치를 높이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피카소의 연인 도라마르
피카소의 연인 도라마르 / 피카소의 연인들은 많다 우는 여인을 그린 시기에 만났던 사람이 도라마르이다.

 

피카소 그림은 처음부터 난해했나? 

피카소의 작품이 처음부터 난해했던 건 아니다. 피카소의 난해한 작품들은 그의 예술적 여정의 결과물이라고 볼수 있다. 초기작들을 보면 피카소의 사실주의 작품들을 많이 볼수 있다.

 

피카소 초기 작품 첫 영성체
피카소 초기 작품 첫 영성체

 

 

첫 영성체는 15세때 그렸던 그림이다.  피카소는 20살 이전에 거장들의 기법을 완벽하게 습득했고 재능도 뛰어나서 끊임없이 실험적인 시도를 많이 했고 기존의 상식을 무너뜨리고 다양한 시각으로 본질을 표현했다. 

 

1901년 푸른방
1901년 푸른방
1905년 작 &lt;파이프를 든 소년 &gt;
1905년 작 <파이프를 든 소년 >
1906년 작 남자,여자 그리고 아이
1906년 작 남자,여자 그리고 아이

 

피카소 그림이 난해한 이유

어떤 사람을 보고 느낀 감정이란 건 한 시점, 한순간을 보고 느끼는 것이 아닌 다양한 관점에서 본것을 한 번에 담아내려는 시도이다.  다시점, 다각도가 본질에 가깝다고 생각했던 피카소였다. 

 

사진 출처 &lt;예썰의 전당 &gt;
사진 출처 <예썰의 전당 >

 

 

 

피카소가 그린 한국전쟁 (6.25 전쟁) 에 대한 그림들

피카소는 작품에 전쟁과 평화에 대한 메세지를 많이 담았고 우리나라를 주제로 그린 작품도 있다. 프랑스 발로리스에 남긴 6.25 전쟁을 주제로 한 작품 라는 작품이 있다.   작품 발로리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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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 게르니카 작품 해설 및 역사적 배경

[이전글]  게르니카 폭격 이야기  게르니카는 스페인 북쪽에 있는 도시 이름이다. 게르니카를 그렸을 당시 피카소의 나이는. 1937년 56 세였다.  한달 만에 완성한 그림이다. 이 그림은 폭 8m 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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